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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달라도 서로 이해는 했던 세종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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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2010-01-15 00:00 조회8,0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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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동서남북]이라는 칼럼란에 조선일보 권태열 논설위원이 올려 놓은 글에 [숙의]와[동연]이라는 의미심장한 두 단어가 나와서 이 글을 통채로 퍼다 올려 본다. 찬성과 반대만이 존재하는 현 정치판이나 또는 이해 관계가 얽히는 모든 곳의 쟁점사항에 이 두 단어를 사용하면 좀 더 빠른 결론을 내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고 이 두 단어를 부활시켜서 널리 보급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해 주는 것 같고 공감하고 싶다.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앙꼬 없는 찐빵"이라고 한 말을 들으며 지난 학기 어느 대학 대학원 '세종대왕의 공론 정치' 토론 시간에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세종시에는 세종이 없다."

세종의 국정 운영에 대해 배우고 난 뒤 머리에는 '충분히 논의한다'는 숙의(熟議)와 '상대를 이해한다'는 동연(同然)이라는 두 단어가 남았다. 세종과 그의 동지들은 물론 정적(政敵)들까지도 숙의·동연의 자세와 정신을 함께했기 때문에 그 많은 발전과 성과가 가능했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500여년 뒤 그의 이름이 붙은 세종시 문제에선 어디에서도 그런 세종의 정신을 찾아볼 수 없다.

세종의 개혁 정책 중 매우 반대가 심했던 것이 세금 제도다. 세종은 관리들이 작황을 현지 실사하고 자기 판단으로 세금을 매기던 과거의 방법을 땅의 비옥도와 그해의 풍흉에 따라 일정한 세율로 고정시키는 방안을 추진했다. 세종의 최대 협력자였던 청백리 황희까지도 끝까지 반대하면서 17년 만에야 결론이 났으니 그 저항 강도는 대단한 것이었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연구에 따르면, 집권 직후부터 고민을 계속하던 세종은 9년차가 돼서야 이 과제를 꺼낸다. 그것도 과거(科擧)시험에 "세법을 고친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라는 문제를 출제하는 매우 간접적이고 조심스러운 방법이었다.

그 뒤 1년간 뜸만 들이다 관료들에게 다시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한번 찾아보라" 하고, 또 1년을 더 기다려 "백성들 생각은 어떤지 여론조사도 해보라"고 지시하면서 일을 본격화했다. 지도자가 '재미 좀 보려고' 몇 달 만에 갑자기 수도를 옮기자고 나왔던 세종시식 발상과는 시작부터 다른 것이다.

세종의 추진 3년 만에 이뤄진 전국 여론조사에서 새 제도를 찬성하는 쪽이 9만8657명, 반대가 7만4149명으로 집계된다. 요즘 정치판 같으면 "옳다구나" 하며 밀어붙였겠지만 세종은 달랐다. 황희 맹사성 등 전·현직 고위관료와 공신들이 대거 반대를 하자 "백성들 뜻에 따라야겠지만 조정의 의논이 분분하니 좀 더 숙의해 보자"며 자신의 뜻을 접는다.

세종은 여론조사 결과가 100% 정당하다고 보지 않았다. 인구가 많은 영·호남·충청 주민들이 일정액만 내면 되는 새 제도가 유리하다고 보고 대거 찬성한 때문이었다. 땅이 척박한 북쪽 지방 주민들은 무더기 반대표를 던졌으나 인구가 적어 밀렸다. 지금 세종시 여론조사 결과도 이런 인구 구조의 특성이 작용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이런 여론조사를 근거로 수정안을 추진하는 현 정부나, 반대로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수도 이전을 밀어붙인 전 정권이나 세종이 지켰던 숙의의 자세와는 거리가 있다.

그 뒤 꾸준히 기존 제도의 폐해를 모아온 세종은 6년 만에 다시 문제를 꺼냈다. 그러자 발목만 잡던 반대 세력들도 이쯤 돼서는 "문제가 있긴 있는 것 같으니 함께 고민해보자"며 동연하는 단계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동연은 당시에 '동의(同意)'와는 조금 다르게 쓰인 단어라고 한다. "의견이 너와 같지(동의)는 않지만 너의 뜻이 그러함(然)은 이해하겠다"는 의미였다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여야 사이에 이런 동연의 정신은 정말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세종의 세제 개혁은 그러고도 2차 여론조사 논란과 시범 실시 과정을 더 거쳐 세종 26년에야 완성된다.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17년 숙고'는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세종시 논란에는 숙의의 자세도, 동연의 정신도 없다. 그런 곳에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으니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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