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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1000 작성일2006-10-27 00:00 조회8,3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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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등단한 '만화가게 아저씨' 노민환씨
"만화야, 시(詩)와 함께 놀거라" 중공업 과장에서 만화가게 주인 그리고 시인

 

임채민 기자 lcm@dominilbo.com

 

 

"제가 입사했을 때였습니다. 교사이셨던 아버지가 제가 일하는 곳을 찾아왔죠. 그때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변변한 편의시설도 없이 눈만 뜨면 공장 짓는 일에 매달리던 때였으니까요. 그때 아버지가 새카맣게 탄 제 모습을 보고 그냥 집에 가자고 하더군요. 다른 직장을 알아 보시기도 했을 겁니다. 그때 저는 하는데까지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일이 즐겁기도 했습니다. 같이 들어온 동기생들도 고생하는데 저 혼자만 힘들다고 빠지기도 싫었고요."

   
1976년 지금의 창원 삼성중공업이 들어선 터를 상상해보자. 허허벌판이다. 그 허허벌판 한 가운데 노민환(48) 씨가 서 있었다. 그는 일명 '창원 삼성중공업 1기생'인 셈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갖게 된 직장이 삼성중공업이었고, 아무 것도 없는 빈 터에서 공장을 짓는 일이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이었다.

1996년 20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직장을 나올때 가졌던 직함은 '자재 과장'이었다.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학창시절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고향(함양)에 들어가 사슴농장을 하면서 시 공부를 할 생각이었어요. 생각처럼 일이 잘 안풀렸죠."

만화가게를 시작한 지는 3년 6개월 쯤 되었다. 96년에서 2003년까지. 6년이라는 시간이 공백으로 남는다.

"주식 하다가 손해도 좀 보고, 조그만 중소기업에서 관리사로 일하기도 했죠. 잘 안되더라고요."

만화가게를 인수하고부터 본격적인 시공부를 할 수 있었다.

자유문예 잡지에 <눈물보따리>로 시인 등단

오전 8시 30분 출근, 밤 12시 퇴근 체제였다. 오전 11시까지는 손님이 뜸한 시간이라 만화가게는 온전히 자신의 작업실이 되었다.

그러다가 2년만에 시인으로 등단했다. 인천에서 발행되고 있는 <자유문예>라는 잡지에 '눈물보따리'라는 시가 뽑혔다.

노 씨는 마산의 '경남데파트' 지하에 널찍한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인터뷰 도중 자꾸 서가에 꽂힌 방대한 양의 만화책으로 눈길이 갔다. 만화책을 보는지 물었다.

"아무렴요. 재미있습니다. 어느 작품이든 나름의 철학이 스며 있어요. 무협만화의 경우 다양한 상식과 고사성어를 익힐 수도 있죠.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 노민환씨가 운영하는 만화가게의 캐릭터 악동이.
일은 더 없이 편하다고 했다. 일단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마음이 편하단다. 물론, 장사가 잘 안될땐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그럭저럭 운영이 된다고 했다. "라면을 끓이거나 할 땐 좀 쑥스럽기도 하지만 즐겁습니다."

노 씨는 삼성중공업 재직 시설 사내 잡지에 수많은 글을 실었다. 시 뿐 아니라 콩트나 수필 등도 창작했다. 그 자료들을 일목요연하게 스크랩해 보관하고 있었다. 노 씨가 내놓은 스크랩 북들을 뒤적이다가, 만화가 이희재 관련 자료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유를 묻기 전에 노 씨의 대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만화가 이희재가 제 매제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만화가게 이름이 '악동이 만화방'이었다. 만화가게 한켠에 걸려 있는 펼침막 속 캐릭터들이 왠지 눈에 익다 했더니 이희재 씨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제가 만화가게를 한다고 하니까 매제가 말리더라고요. 요즘 만화방이 어디 잘 되겠냐고 하면서요. 그래도 막상 가게 문을 열고 나니까 홍보형 대형 걸개 그림까지 보냈더라고요. 지하로 가게를 옮기는 바람에 그 걸개 그림을 걸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지만, 노 씨는 지금도 불쑥불쑥 찾아오는 알 수 없는 답답함을 글쓰기를 통해 해소하고 있다. 어릴 적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내 '시어'를 만들다보면 시름도 어느새 가신다.

일종의 집념이 느껴졌다. 밤 12시까지 만화가게에 있다가 내서에 있는 집으로 퇴근한다는 노 씨에게서 힘들어하는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화가게 일을 하면서 묵묵하게 시를 써온 노 씨. 소중한 결실을 맺었다. 그러나 아직 첫걸음이라고 한다.

"지금도 배우는 단계죠.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등단을 했죠. 자만하지 않고 더 노력해야죠."

'삼성중공업 간부→만화가게 주인→시인'으로 이어진 노 씨의 인생 역정은, 앞으로 펼쳐질 '가지 않은 길'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노 씨 자신도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입사할 때 딱 20년만 근무하자고 다짐했었습니다. 이제 앞으로의 시간은 문학하는 사람들 뿐 아니라 사회 여러 방면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길들을 개척해 나가야죠."

3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악동이 만화방'에서는 140 여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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